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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권의 마이한반도


‘참말’과 ‘거짓말’이 있다는 ‘거짓말’

-‘시적 상상력’의 재미있는 얼굴•2(사진 : 한강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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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지방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자취생활을 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자취생활이 공부에 지장이 많아 하숙생활도 했습니다. 집안이 하도 궁색하여 어려운 상황을 아는 형과 누나들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필자의 쓸데없는 자존심은 아마도 이 시기에 형성되었을 것입니다. 창피함을 견디는 데에는 자존심만 한 것도 사실은 없었지요.

 

집안이 산산조각이 나서 공중분해가 되었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자 같은 도시에서 자취생활을 하는 한 학년 위 옆동네 누나가 저를 많이 챙겨주었습니다. 시골 바로 옆동네에 살고 있어서 우리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기도 했지요. 한번은 저녁식사를 해 먹여 보내려고 저를 그녀의 자취방으로 불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좀 늦게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학교 쉬는 시간 복도를 어정거리는데 담임선생님 지나가시다가 한 말씀 툭 던지시더군요. 별 문제 없는 거지? 저는 그냥 무심히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며칠 후 그 누나가 다시 자취방에 찾아왔습니다. 학교에서 무슨 일 없었느냐, 묻더군요. 없다 했지요. 웃더라고요. 주인아저씨가 양쪽 학교에 모두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학생들 귀가 후 지도를 부탁했겠지요.

 

별 문제가 없었다는 제 대답은 거짓인가요, 참인가요.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주인아저씨의 생각은 참인가요. 거짓인가요.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사춘기였잖아요. 지금 그 누나는 필자의 처형이 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필자를 챙겨주었고 소중한 동생까지 묶어 주었습니다. 지금도 참 편하고 고마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참과 거짓은 필자도 지금의 처형도 판단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거짓은 본인들도 잘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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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은 정체불명입니다. ‘참말거짓말은 정체불명입니다. ‘거짓말보다 참말의 실체를 아는 것이 정체 파악에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부터 사실은 참말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인간은 평등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말 정도가 참말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이 말부터가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인간은 정말로 불평등하고 불공평합니다. 너무 불평등하다 보니까 평등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는 배웠습니다. A라는 지점에서 B라는 지점까지의 최단거리는 직선이라 했습니다. 과학자들은 그게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라고 말합니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던가요? 이것은 유치원생에게나 어울리는 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에도 이 없는 시대에 진입해 있습니다. 과거의 에 무차별적인 오류가 있다고 판단이 되는 시대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배움이라는 것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한시적인 상식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참말이란 무엇인가요.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요. 여러분이 참말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이 정말 참말이 맞는지 생각은 해보셨을까요. 분명 은 어딘가에 존재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걸 믿습니다. 그러니까 참말에 운명을 걸고 사는 거지요. 하지만 이나 참말은 결코 쉽사리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당연히 거짓으로 그리고 거짓말로 위장한 채 우리 앞에 서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그 얼굴을 볼 수가 없는 것이 비슷한 진실이 아니었던가요?

 

현대에 와서도 존재하는 북쪽의 김 씨 3대를 바라보면 왕족의 혈통이 기본적으로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권력이 있든 없든 지구상에는 지금도 왕이나 황제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발전된 민주주의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재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의 를 자식들이 그대로 넘겨받는 일이 그저 자연스럽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방법을 찾아찾아 상속을 받으려 무진 애를 씁니다. 이런 세습의 문제는 옳다, 그르다 할 문제가 사실은 아닙니다. 그리고 그들도 막강한 주변의 저항에 부딪히면 당연히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는 있습니다. ‘의 문제이고 생사의 문제인 것이지요.

 

그런데 공평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태어나든 죽을 때까지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지만 결국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은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 ‘참말이 여기에 하나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 외에도 참말이 존재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 참말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죽은 후에도 죽지 않는 법을 고안해 냈고, 열심히 살다 보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거짓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만약에 이 거짓말이 옳다면 세상에 오로지 존재했던 참말은 이제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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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짓말속에서 살다가 죽습니다. ‘참말이라고 교육받고 참말이라고 세뇌를 받고는 있지만 엄밀히 들여다보면 죽음 외의 참말은 찾기가 힘이 들지도 모릅니다. ‘참말의 이면에는 강자들의 논리나 기득권층의 논리나 선각자들의 논리로서의 핑계와 유혹과 현혹이 숨어있습니다. 잘 분석해보면 그 참말에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시인들은 그 문제점을 찾아내어 새롭게 거짓말임을 증명하는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증명 자체도 일종의 거짓말이거나 거짓말로서이겠지요.

 

우리는 참말로 위장된 거짓말속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쩌면 거짓말로 위장된 참말일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이 없다면 거짓도 당연히 없는 것이 아닐까요? 이 세계에 참말이 없다면 당연히 거짓말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거짓거짓말이 존재하지 않는 참말을 앞세워 힘없는 백성들을 겁박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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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짓말‘을 부정하고 사악한 것으로 몰아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실은 ’거짓말‘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따뜻하고 떳떳한 인간의 언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거짓말‘이야말로 진정한 시인들의 가슴이고 꿈이고 언어임을 인정해 보는 일도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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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1

이성필 기자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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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참말 거짓말에 대한 글을 볼 때마다 열정이 생깁니다.
시인들은 참말의 문제점들을 찾아 새롭게 거짓말임을 증명하는 존재들이란 말에 힘도 생깁니다.
사실 세상에는 참말도 거짓말도 없는 겁니다. 아, 참말 하나 있지요. 사람은 반드시 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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