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나상금 여사와 칠순 아들 김성배 대표
-아름다운 인생
본문
군산에서 작은 전기자재납품사업(금성전기)으로 노후를 꾸려가는 70세의 김성배 씨는 지척에 따로 사시는 94세의 어머니를 챙기는 것이 하루 주요 일과다. 토요일에는 어머님 댁에서 함께 자고 일어나 집 근처 교회당을 찾는다. 예배를 마치고 어머님 사시는 아파트에 다시 모시고 나서 자신의 집으로 향한다. 직접 모시지 않는 것은 아직도 건강하신 어머님이 오히려 술을 좋아하는 아들을 귀찮아해서이다. 예배를 마치고 신도들이 모두 성지순례차 떠난 교회 사택에서 사과나무를 배경으로 아들과 한 컷 남겼다. 늙으신 어머니에게 함께 늙어가는 아들은 무엇일까. 손을 맡기고 만개한 미소가 아름답다.
외갓집은 덕 있는 집안여. 할아버지 쌍둥이 얻으시고, 막내 며느리 쌍둥이 얻고, 손주가 또 쌍둥이를 얻었잖여. 삼대가 내리 쌍둥이를 얻기가 어디 쉬운감. 최근 그의 둘째아들이 쌍둥이를 낳았다. 그것도 딸 아들 나란히였다. 나상금 여사는 아들에게도 덕담 일색이다. 우리아들 효자지. 암 효자여. 어디 나무랄 데가 있어야제. 다른 거 다 제껴두고, 에미 앞서가지 않고 건강해주니 그게 젤 효자인 거고. 앞으로도 복이 굴러떨어질 것이고만.
그는 민주화운동 유공자 증서를 자랑하기도 한다. 별것은 아니지만 술값은 쬐끔 나와. 고맙지. 80년대이든가 강경대 사망사건으로 시위 도중 최루탄 직격탄을 가슴에 맞고 정신을 잃었다. 아직도 상처가 깊다. 이때의 동지들인 김성길(교수) 씨와 조광철(회사원) 씨가 가끔 시간을 내어 찾아온다. 그는 그들과 바다낚시를 즐긴다. 낚시하는 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묵은 이야기도 나누고 자신들의 인생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도 반성할 게 많은 인생이지만, 그래도 구순 어머님께서 건강하게 살아계시니 모든 죄가 사함을 받을 것만 같다.
징게맹게 황금들판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산 항구거리로 들어왔다. 아버지 여의신 어머니의 터전도 논밭에서 도시의 신앙밭으로 옮겨졌다. 그는 동네 교회의 안수집사이기도 하다. 술은 마셔도 사람 좋은 그에게 안내를 받으면 그들의 신심도 당연히 깊어지리라.
그는 나이 칠십에도 일을 쉬지 않는다. 젊어서 당한 사업실패로 아직도 다리가 휘청거리긴 하지만 그렇다고 굶을 정도는 아니다. 아직은 당당하게 살아있고 싶어서이다. 아니 당당하게 술을 마시고, 당당하게 술을 사주고 싶어서이다. 전봇대를 심는 것도 그의 일 중 하나다. 나이가 있는 그가 전봇대에 직접 오르는 일은 물론 없다. 전봇대 심으면서 술을 마셨지. 요즘엔 일감이 줄어들긴 해. 그래도 술 마시는 덴 충분해.
그는 밤이 되어 거나하게 술이 취하면 친구들에게 실없이 전화를 걸기도 한다. 그의 친구들은 귀찮은 그의 전화를 거의 받아준다. 친구야, 별일 읍냐. 그래 건강하자. 목소리 들으니 살 거 같다. 가끔은 호칭이 바뀌기도 한다. 아이고 성님, 술 한잔하다가 갑자기 전화를 해부렸네용. 술맛이 아주 꿀맛이랑게.
그는 효자가 아니다. 그는 효자가 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그런 그를 바라보기만 해도 나상금 여사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절로 핀다. 숨길 수가 없다. 꾸밀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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