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이 맞닿는 김제 들녘, 다시 축제가 되다
-제28회 김제지평선축제, 5일까지 벽골제·김제 시내 일원서 펼쳐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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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농경문화, 지평선에서 빛나다!’…농경문화의 어제와 오늘을 축제로
끝없이 펼쳐진 들판 저편에서 하늘과 땅이 맞닿는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곳, 전북 김제의 가을이 다시 축제로 물들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농경문화축제인 ‘제28회 김제지평선축제’가 10월 1일 벽골제 일원에서 막을 올렸다. 축제는 5일까지 닷새 동안 벽골제와 김제 시내권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올해 주제는 ‘K-농경문화, 지평선에서 빛나다!’다. 5개 분야 62개 프로그램을 통해 김제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농경문화와 지역의 삶을 오늘의 축제 언어로 풀어낸다.
김제지평선축제가 다른 지역 축제와 구별되는 가장 큰 힘은 역시 ‘김제 들녘’ 자체에 있다. 가을이면 황금빛 벼가 들판을 채우고, 그 끝에서 지평선이 하늘과 만난다. 축제를 위해 별도의 무대를 만들어내기 이전에 자연과 들녘이 이미 거대한 무대가 되어 있는 셈이다.
그 중심에는 벽골제가 있다.
우리나라 고대 수리시설을 대표하는 벽골제는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신라 흘해왕 21년인 서기 330년에 축조됐다. 당시 제방 길이는 3,250m에 이르렀으며, 오랜 세월 한반도 농경문화와 수리 역사를 증언해 온 문화유산이다. 고대 동아시아 수리시설의 역사와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관개시설유산에도 등재됐다.
그래서 지평선축제에서 벽골제는 단순한 행사장이 아니다. 오늘의 축제를 1,700년 전 농경의 역사와 연결해 주는 공간이다.
올해 축제 역시 ‘보는 축제’보다는 직접 몸으로 경험하는 농경문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벼 수확을 비롯해 새끼 꼬기와 가마니 짜기, 메뚜기 잡기, 아궁이 쌀밥 짓기, 연날리기와 줄다리기 등 예전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 체험 프로그램으로 되살아난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직접 밥을 지어보는 체험은 쌀 한 톨과 밥 한 그릇이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어져 온 농경의 시간을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한다.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공간도 확대됐다. 대형 에어바운스와 회전목마 등이 마련된 ‘지평선 키즈카페’, 해먹과 피크닉 공간이 어우러진 숲속 플래닉존, 드론스포츠 상설체험장 등이 운영된다. 전통 농경문화와 오늘의 놀이문화가 한 축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나는 셈이다.

공연도 풍성하다. 국악한마당과 전국농악경연대회, 다문화 가요제, 청소년가요제, 거리공연과 줄타기, 세계 민속 예술대전 등이 축제 기간 곳곳에서 펼쳐진다. 해가 진 뒤에는 불꽃과 레이저, 조명을 활용한 멀티미디어 쇼를 비롯해 쥐불놀이와 횃불놀이 등 김제 들녘의 밤을 밝히는 프로그램도 이어진다.
먹거리 역시 농경문화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다.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점들이 참여하는 맛집장터와 함께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8개국의 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음식 테마거리와 야시장도 마련됐다. ‘쌀의 고장 김제’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음식문화로 확장한 것이다.
무엇보다 김제지평선축제가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까닭은 축제의 뿌리가 지역의 실제 삶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김제 사람들에게 들판은 관광상품이기 이전에 삶의 터전이었다. 봄이면 논에 물을 대고 모를 심었으며, 뜨거운 여름을 지나 가을이면 벼를 베었다. 그 오랜 노동과 기다림 속에서 한반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가 형성됐다.
지평선축제는 그 삶을 축제의 언어로 바꾸었다.
벼를 베고,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짜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는 일은 이제 많은 사람에게 낯선 풍경이 됐다. 그러나 축제장에서는 사라져가는 농촌의 기억이 체험이 되고 놀이가 되어 새로운 세대와 만난다.
그 점에서 김제지평선축제는 과거의 농경문화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농업과 농촌이 품어온 공동체의 기억을 오늘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전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문화적 현장이기도 하다.
김제시는 올해 축제 방문객들의 편의를 위해 행사장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고 안내소와 휴게시설 등도 확충했다. 축제장에서는 김제사랑카드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캐시백 행사 등 지역경제와 축제를 연결하는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되고 있다.
정성주 김제시장은 이번 축제를 앞두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과 볼거리, 먹거리를 준비했다며 세대와 국적을 넘어 방문객들이 함께 추억을 만드는 축제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가을의 김제에서는 굳이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아도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다.
황금빛 들판이 끝나는 자리에서 하늘이 시작되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걷는다. 벽골제의 1,700년 역사와 오늘의 농부가 키운 벼, 아이들이 날리는 연과 아궁이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한 풍경 안에 들어온다.
지평선은 김제의 자연이지만 이제는 김제를 상징하는 문화가 됐다.
10월 5일까지 이어지는 제28회 김제지평선축제는 바로 그 지평선 위에서 오래된 농경의 기억과 오늘의 삶을 다시 이어놓고 있다.
가을 김제를 찾는다는 것은 어쩌면 축제 하나를 보러 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오랫동안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과, 우리 땅에서 가장 넓고 오래된 풍경 하나를 만나러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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