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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복 연출가, 얼음 같은 이성과 불꽃 같은 열정으로 무대 위에서 빚어내는 삶

-인터뷰어 강 수(시인·리토피아 편집위원), 사진 제공 : 이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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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복.jpg이광복 연출가

 


강수 : 중국 유학을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가시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있으시면 소개해 주세요.


이광복 : 우연한 기회에 참여하게 된 중국 경극 연기 단기 연수 프로그램 기간 중, 중국 경극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죠. 그래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경극에 대해 알고 싶었고, 더 중요한 것은 중국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가르침에 감명을 받았어요. 물론 국립대학으로서의 중국희곡학원의 교육 수준과 전문성 역시 유학 결정의 중요한 이유였죠. 

 

학부졸업공연사진 1.jpg학부 졸업공연사진

 

석사졸업 사진 이진홍 장관정 지도교수.jpg석사 졸업 이진홍, 장관정 지도교수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학부 입학시험이에요. 국립 예술대학인 중국희곡학원은 높은 자존심으로 유명해요. 반년 정도 연기 시험 준비와 중국어 능력 시험을 준비하면서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지만 그래도 지원했습니다. 첫 시험에서 다섯 분 정도의 심사위원이 계셨는데, 예상대로 1차 시험에서 탈락했어요. 그런데 제가 학교 측에 준비한 연기라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고, 연기 시험까지는 치르게 되었어요. 연기시험이 끝난 후, 제가 중국희곡학원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연설을 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거의 30분 이상 어눌한 중국어로 이야기한 것 같아요. 저는 경극 배우가 될 사람은 아니지만, 한중 공연 교류를 이끄는 문화 사절로서 성장할 수 있으니 입학을 허락해 달라고 했어요. 그 결과, 심사위원들의 치열한 토론 끝에 98학번으로 중국희곡학원 연기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결국 석사까지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에피소드는 저의 스승님을 만나게 된 일입니다.


강수 : 스승으로 모셨던 선생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중국에서도 아주 유명한 분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광복 : 제 스승님의 존함은 이진홍이라는 분입니다. 경극 대가 매란방의 제자이시죠. 중국 유학 초기 겨울방학에 귀국하지 않고 연기 연습을 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학생을 지도하고 계신 스승님을 보게 되었어요. 제 스승님은 남단–여역을 전문으로 하는 남자배우이셨는데, 그날도 여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셨어요. 작고 아담한 선생님께서 섬세하게 연기 지도하시는 모습을 추운 연습실 복도에서 숨어서 봤어요. 그때 선생님께서 불러주셔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참관할 수 있었고, 이후 인사를 드렸어요. 그때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와 ‘열심히 하라’는 격려가 지금도 기억납니다.


 스승님은 8세에 경극에 입문하셔서 거의 80년에 가까운 세월을 경극만 해 오신 분이에요.  배우뿐만 아니라, 교육자로서도 유명해서 수많은 중국 국가 1급 배우들을 배출하셨죠. 정식으로 배사식(입문식)을 올린 한국인은 제가 유일합니다. 2001년 6월 16일, 스승님의 79세 생신에 배사식을 올린 이후, 스승님은 매 학기 수업, 학부 졸업 공연, 석사 입학시험, 논문 발표, 졸업까지 중요한 순간순간 모든 과정을 함께 해 주셨어요. 제가 학부생일 때는 제 공연을 위해 의상과 분장까지 챙겨주셨고, 중요한 시험마다 함께 시험장에 들어가 시험을 지켜보셨습니다.


석사 과정을 거치며 저는 스승님께 연기뿐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좌우명도 배웠습니다. 그것은 ‘나는 학생이 부족하거나 느린 것은 겁나지 않다. 하지만 학생들이 노력하지 않는 것이 겁난다.’라는 말씀이었어요. 이 말씀은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뿐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끊임없는 노력을 요구하게 합니다. 평생을 경극 배우이자 교육자로 살아오신 스승님의 존재는 지금도 연출가, 교육자, 한중 공연 교류 창작자로 살아가는 제게 커다란 산과 같습니다. 산은 움직이지 않지만 늘 그 자리에 있듯, 스승님은 제가 방향을 잃지 않도록 해 주시는 존재입니다. 저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스승이 되고 싶습니다.

 

강수 : 중국과 우리나라 예술 작업의 차이점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이광복 : 창작 주제와 제작 환경이라고 생각됩니다. 중국은 관官 기관 단체들을 중심으로 대형 공연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지금은 개인 극단들도 활발히 작업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의 정치적 환경의 영향을 받습니다. 한중 합작의 경우에도 대본 심사 등을 거쳐야 공연 창작이 가능해집니다. 저는 중국의 개인 극단보다는 관 기관과의 협업을 더 많이 하는데, 이 과정에서 창작 주제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분명히 있어요. 중국 유학을 했고 중국을 잘 안다고 믿었던 저조차도 창작 주제 선정과 기관장의 창작 과정 참여에 익숙해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실제로 대사 한마디를 수정하면서도 꽤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개인 극단들의 창작 활동이 더욱 활발하죠. 한국 연극의 발전은 창작자 개인의 노력과 피땀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창작의 주체가 개인이기 때문에 사회적 화두나 이면을 파헤치는 작품도 많죠. 이는 양국의 정치적 환경, 공연계 생태 환경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제작 환경은 중국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편입니다. 관 단체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참여하고 있는 중국 대량산 국제연극제는 사천성 문화청 주관으로 시작해 지금은 국영 기업이 주관하고 있는데, 막대한 자금력과 연극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2019년 중국대량산국제연극제 다국연합공연 영웅 미국연출과 함께.jpg2019년 중국대량산국제연극제 다국연합공연 영웅 미국 연출과 함께

 

2019년 중국대량산국제연극제 다국연합공연 영웅 1.jpg2019년 중국대량산국제연극제 다국연합공연 영웅

 

2019년 중국대량산국제연극제 다국연합공연 영웅 단체사진.jpg2019년 중국대량산국제연극제 다국연합공연 영웅 단체사진

 

2019년 중국대량산국제연극제 다국연합공연 영웅 신체훈련 2.jpg2019년 중국대량산국제연극제 다국연합공연 영웅 신체훈련


강수 : 지금까지 활동해 오신 이력을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광복 : 2005년 석사 학위 취득 후, 한국에서 연극 제작 및 연기 중심의 강의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한양대 문화콘텐츠학 박사과정에 입학해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서울연극협회, 한국연출가협회, 한국여성연극협회, 중국 산둥성 예술연구원, 중국 대량산 국제연극제, 중국중앙희극학원, 중국희곡학원, 중국 극단 삼척기 등 다양한 한중 단체들과 협업하며 한중 합작 창작 및 공연 소개, 다국 합작 워크숍 등을 진행해 왔습니다.


2017년에는 창작집단 일각을 창단해 개인적으로 진행하던 한중 합작 공연을 극단으로 확장했습니다. 2016년 한중 합작 아시아 연출가전 연출, 2022년 제4회 대구실험극페스티벌 예술감독 등을 역임하며 무대 공연 창작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또한, 경북대 공연예술과 겸임교수,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한양대 출강 등을 통해 후학 양성에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강수 : 공연이나 연출을 할 때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이광복 : 모든 공연에는 각기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연출은 배우들과 스태프 전체를 이끌며 창작을 수행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작품의 예술성은 공연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이를 위해 배우 및 스태프들과의 관계가 핵심이에요. 원하는 예술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소통, 교류, 실수를 거쳐 장면 하나하나를 구축하게 되죠. 이 과정에서 연출은 배우와 스태프 사이를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저는 공연이 예술 장르 중 가장 원시적인 장르라고 생각해요. 절대로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출로서 배우들과 스태프들 앞에 한 발 먼저 나서 작품 전체를 바라보고, 관객에게 전달할 이야기를 정리하며, 무대를 구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아요. 수없이 많은 결정을 내려야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늘 배우, 스태프, 그리고 제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작품이 잘 나온 것은 배우와 스태프가 잘한 것이고, 실패한 작품의 책임은 연출에게 있다.’ 이 말은 반박의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의견을 수렴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연출의 역할이기 때문이죠. 

 

2023년 중국대량산국제연극제.jpg2023년 중국대량산국제연극제

 

공연연습 사진 2.jpg공연연습 사진

 

극장 공연 준비 중 2.jpg극장 공연 준비 중

 

2024년 10월 중국희곡학원 국제포럼 단체사진 1.jpg2024년 10월 중국희곡학원 국제포럼 단체사진

 

이 외에도 점점 더 열악해지는 창작 제작 환경이 큰 어려움입니다. 연극 연출은 공연 장르 중에서도 가장 제작비 확보가 어려운 분야 중 하나입니다. 대관료, 스태프 인건비, 제작비 등은 해마다 오르는데, 많은 지원사업이나 연극제의 지원금은 제자리걸음입니다. 그렇다고 지원 없이 창작을 지속하기는 더욱 어려워요. 코로나19 이후 소상공인과 자영업자가 폐업하듯, 연극계 역시 많은 선배와 동료들이 ‘공연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어요. 


그 결과, 말도 안 되는 제작지원금에도 연출가들이 지원하는 상황이 반복됩니다. ‘이 금액이라도 해야 하나?’,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방법이 없으니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열악한 환경 속으로 창작자 스스로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현실이 반복되며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죠. 저는 국가적 안정 이후 창작 공연 제작 분야에 대한 지원 확대와 금액 증액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강수 : 요즘 K-culture가 대세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작품들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광복 : 저는 그것이 한국만의 ‘섬세함’과 ‘미학적 철학’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업 관계로 미국, 유럽보다는 중국, 대만, 일본, 태국,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들의 공연 및 영상 콘텐츠를 자주 접하는데, 한국 작품은 대본과 배우의 섬세한 연기뿐 아니라 연출적 감각도 매우 뛰어납니다. 그 바탕에는 ‘미학에 대한 철학’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한국 공연과 영상 콘텐츠의 ‘시각적 미학’은 독보적입니다. 연극 무대뿐 아니라 디지털 플랫폼에서 방영되는 숏폼 콘텐츠까지도 시각적 아름다움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으며, 색감의 활용, 표현의 기교, 편집 기술 등은 세계적으로도 매우 높은 수준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K-culture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주요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강수 : 작업을 할 때 선생님만의 철학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이광복 : 저의 철학은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창작하는 것입니다. 연기 전공자에서 연출자, 제작자, 작가, 한중 공연 교류 기획자, 교육자로 활동하는 지금도, 저의 잣대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가?’, ‘관객에게 떳떳할 수 있는가?’, ‘동료 창작자에게 창피하지 않은가?’입니다.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작업을 시작합니다.

 

2024년 중국희곡학원 국제포럼 단체사진 2.jpg2024년 중국희곡학원 국제포럼 단체사진

 

2024년 10월 중국희곡학원 국제포럼 발제.jpg2024년 10월 중국희곡학원 국제포럼 발제


강수 :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나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광복 : 저의 계획은 수업과 창작, 한중합작 교류입니다. 가장 빠른 계획은 5월 22일부터 6월 1일까지 2025년 ‘보편적이지만은 않은 극적 무대’의 공연입니다. 「이름이 지워진 남자, 보이체크」라는 작품으로 참가합니다. 그 이후에는 중국 일정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드 사태, COVID – 19 등의 이유로 한중합작 교류의 길이 막혀있었는데, 작년부터 중국에서 열리는 국제포럼, 국제연극제 등에 참여하면서 다시 한중합작 공연 창작과 함께 다양한 교류 등의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 시작으로 올해 하반기 6월부터 모교인 중국희곡학원과 함께 단기 경극연수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며, 7월에는 중국 동료들과 함께 프랑스 아비뇽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하반기에는 새로운 공연 계획 등이 있습니다. 늘 그렇듯이 수업과 연습, 극장과 공연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즐겁게 공연을 하고 있을 계획입니다. 

 

2025년 1월 경복대학교 공연예술과 겨울 신체훈련 단체사진.jpg2025년 1월 경복대학교 공연예술과 겨울 신체훈련 단체사진

 

극장 셋업 사진 4.jpg극장 셋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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