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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의 그리움, 정읍 칠보에서 다시 만나다

-제3회 단종비 정순왕후 선양문화제 성황… 역사와 예술, 시민의 노래로 이어진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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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왕후 태생지 정읍과 단종 유배지 영월의 역사적 교류가례식·추모제·복위식에서 동진강 시민가요제까지 

 

500년의 세월을 건너 단종과 정순왕후가 제3회 정순왕후 선양문화제를 통해 다시 만났다. 이 행사는 칠보면 주민자치원회(위원장 이경연)와 송암문화재단(대표 송기혁)이 공동으로 주최 주관했다. 조선 왕조의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생이별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이학수 시장) 칠보면(면장 안용운)에서 역사와 예술, 시민들의 노래로 되살아난 것이다. 

 

지난 919일 정읍시 칠보면 무성서원 유교수련원 특설무대에서 열린 3회 단종비 정순왕후 선양문화제는 정순왕후의 삶을 기리고 그 역사적 의미를 오늘의 문화로 계승하기 위해 마련됐다. 오전 10시부터 밤 9시까지 이어진 이날 행사는 정순왕후 문화대사 선발대회와 가례식 재현, 헌시 낭독, 추모제, 복위식 관련 행사에 이어 동진강 시민가요제까지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특히 올해 문화제는 정순왕후의 태생지 정읍과 단종의 유배지 강원도 영월을 연결하는 역사적 교류의 의미를 담았다. 단종과 정순왕후가 생전에 이루지 못했던 만남을 두 지역의 사람들이 역사와 문화의 이름으로 이어간다는 점에서 이번 행사는 단순한 지역축제를 넘어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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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왕비의 비극, 500년 뒤 고향에서 다시 피어나다

정순왕후는 조선 왕조에서 유일한 호남 출신 왕비로 알려져 있다. 정읍 칠보면에서 태어나 열네 살에 칠보를 떠나 열다섯 살에 왕비로 책봉됐으나, 단종이 왕위를 잃고 유배되면서 비극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단종과 정순왕후는 영월과 한양에서 서로를 그리워했지만 끝내 다시 만나지 못했다. 정순왕후는 여든두 살에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애는 왕실의 권력 다툼에 휘말린 한 여성의 비극인 동시에, 긴 세월 동안 남편을 그리워하며 살아간 인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번 문화제는 이러한 정순왕후의 삶을 역사적 사실로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예술 행사로 되살렸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행사를 준비한 정순왕후선양회는 단종의 유배지 영월과 정순왕후의 태생지 정읍이 500년의 시공간을 넘어 역사적 가교를 잇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했다. 

 

행사에 앞서 영월에서는 조명행 전 케냐 대사 등을 포함한 10여 명의 방문단이 정읍을 찾았으며, 이복형 정읍시의장 등 지역 관계자들과의 교류도 있었다. 두 지역이 공유하는 역사를 문화교류의 자산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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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례식에서 추모제까지, 정순왕후의 삶을 되새기다

오전 행사는 제1회 정순왕후 문화대사 선발대회로 문을 열었다. 12명이 출전한 선발대회는 정순왕후의 역사와 정신을 널리 알릴 문화대사를 선발하는 프로그램으로, 특히 청소년들의 참여를 통해 역사문화 계승의 의미를 더했다. 

 

이어 오전 1130분부터는 정순왕후 가례식 재현이 진행됐다. 조선 왕실의 혼례를 재현하는 이 프로그램은 궁중 음식과 의례를 통해 당시의 문화를 소개하는 한편, 왕비로 책봉됐던 정순왕후의 생애를 되돌아보게 했다. 왕비가 되는 순간의 화려함과 이후 그에게 닥친 비극적인 운명을 함께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가례식은 특별한 역사적 울림을 지닌다.

 

가례식에 이어 안성덕 교수의 헌시 낭독이 진행됐다. 역사의 기록이 사건과 연대를 통해 과거를 증언한다면, 시는 그 속에 남겨진 인간의 슬픔과 그리움을 오늘의 언어로 되살린다. 정순왕후에게 바치는 헌시는 500년 전의 비극을 현재의 정서로 연결하는 문학적 추모의 시간이 됐다.

  

이어 제3회 정순왕후 추모제가 거행됐다. 조명행 전 케냐 대사가 초헌관을 맡는 것으로 사전 안내된 추모제는 정순왕후의 삶을 기리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의례로 마련됐다. 왕실의 가례에서 추모의 의식으로 이어진 오전 프로그램은 정순왕후의 생애를 하나의 역사적 서사로 연결했다.

  

복위식으로 이어진 역사, 시민의 참여로 확장되다

오후에는 정순왕후 생가터 관련 행사와 복위식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복위식 행차는 주민들이 함께 즐기는 시민가요제와 연계해 진행하도록 구성됐다. 이는 정순왕후를 기리는 역사적 의례를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참여와 연결하려는 시도였다. 

 

같은 시간 동진강 시민가요제 예선과 리허설도 진행됐다. 전날의 예선에는 모두 31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저마다 준비한 노래를 선보이며 저녁에 열릴 결선 무대를 향한 열기를 높였다. 오후 5시에는 따뜻한 찰밥이 제공됐다. 오전부터 행사장을 지킨 주민과 관계자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하며 야간 공연을 준비했다.

  

이번 문화제는 관람객들에게 점심과 저녁을 무료로 제공해 주민들이 하루 종일 행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역사문화축제가 지역 주민들의 일상과 만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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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절초합창단과 시립국악단, 예술로 되살린 역사의 숨결

오후 530분부터는 본격적인 문화예술 공연이 펼쳐졌다. 구절초합창단의 공연에 이어 시립국악단의 창무극이 무대에 올랐다.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합창과 전통음악··극적 표현이 결합된 창무극은 정순왕후 선양문화제의 예술적 내용을 풍성하게 했다. 

 

정순왕후 홍보대사의 입장과 인사도 이어졌다. 오전의 가례식과 추모제가 정순왕후의 삶을 역사적으로 기억하는 시간이었다면, 저녁 공연은 그 기억을 오늘의 문화예술로 확장하는 무대였다. 특히 역사적 인물을 기리는 행사에 시 낭독과 합창, 국악 공연을 결합한 것은 문학과 공연예술이 지역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풍부하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동진강의 밤, 시민들의 노래로 축제의 대미를 장식하다

이번 문화제의 마지막은 동진강 시민가요제가 장식했다. 조연비의 사회로 진행된 가요제에는 가수 쪈이가 함께했으며, 4개 동아리 공연과 예선을 통과한 8명의 결선 무대가 펼쳐졌다.

  

시민들은 각자 준비한 노래를 선보였고, 동아리 공연이 더해지면서 무대는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문화공간이 됐다. 행사 중간에는 행운권 추첨도 진행돼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했다. 

 

오후 8시쯤부터는 줌바 공연으로 흥겨운 분위기를 이어갔으며 마지막으로 초청가수 김용임의 공연이 펼쳐져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계속된 축제의 막을 내렸다. 고향을 초청 방문한 김용임 가수는 10여 곡의 노래를 불러 무대와 객석을 감동과 환호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정순왕후를 추모하는 엄숙한 의례로 시작한 하루가 시민들의 열정적인 노래와 춤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이날 행사를 오전부터 마지막 무대까지 지켜보면서 이번 문화제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선양과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즐거움을 어떻게 하나로 연결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정순왕후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함께 역사를 기억하고, 시를 듣고,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보냈다. 

 

정읍과 영월, 역사의 그리움을 문화의 만남으로

3회를 맞은 정순왕후 선양문화제는 정읍 칠보가 지닌 역사적 자산을 지역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정순왕후의 태생지 정읍(칠보)과 단종의 유배지 영월은 서로 다른 지역이지만, 두 사람의 삶을 통해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이번 문화제가 지향하는 역사적 교류는 과거의 비극을 단순히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오늘의 문화적 만남으로 바꾸는 일이다. 더욱이 행사가 열린 무성서원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가운데 하나다. 지역의 역사와 교육, 선비정신을 간직한 공간에서 정순왕후의 삶을 기리는 행사가 열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앞으로 정순왕후 선양문화제가 정읍과 영월의 지속적인 문화교류, 역사 연구, 문학과 공연예술의 창작으로 이어진다면 지역을 넘어서는 역사문화축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19일 칠보의 하루는 500년 전 헤어진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오늘의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이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단종과 정순왕후는 끝내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500년이 지난 오늘,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정읍 칠보에서 만났다. 역사가 남긴 이별은 그렇게 문화가 만들어낸 만남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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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시

억만년 살고 지옵소서

-505주기 의덕단량제경정순왕후(懿德端良齊敬定順王后) 추모

안성덕  

 

영도교(永渡橋) 생이별에

해가 뜨고 지는 일도 죄스러웠겠지요.

달이 뜨고 지는 일도 한스러웠겠지요. 

 

전라도 땅 고현내(古縣內)에서 꽃가마 타고 와

열네 살 꽃 시절에 연 맺은 짧은 세월,

여느 여인네처럼 신혼 꿈 달콤했을까요? 

 

오백 리 동쪽 영월(寧越) 청령포(淸泠浦)

끝내 설운 임 보내옵고

날마다 동망산(東望山)에 올라 통곡하셨다지요.

토한 피 몇 동이랍니까.

  

압니다.

망망 첩첩 유배지에서 한양 궁궐 우러르며

자규(子規) 울음에 괴로워하시던

귀먹어 못 듣는 하늘을 원망하시던 임 대신

절망을 이겨내신 줄.

사람을 이겨내신 줄. 

 

바늘 하나 쥐지 못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끝끝내 구차한 삶 견뎌내는 것뿐이었겠지요.

임 몫까지 오래 남아

눈엣가시로 콕, 콕 찔러대는 것뿐이었겠지요. 

 

살아 더불지 못한 한 많은 세월에

열일곱 비명에 가신 설운 임

단 하루라도 생각지 않은 날 없었겠지요.

저승에서도 함께 하실 수 없으니, 생각 ()

사릉(思陵)의 소나무가 장릉(莊陵) 향해 기운 까닭이겠습니다. 

 

부디 억만년 살고 지옵소서.

부디 평안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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