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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박명호의 빈 공간에 지친 마음들 모아 만든 변화

―목포에서 국내 최초 사례를 만드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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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호0-20.jpg박명호 '공장공장' 대표

 

아홉 살이었다. 장난을 좋아하고 매일 밝게 웃는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괴롭힘은 시작됐다. 때리고 욕하고 던지고 밀었다. 친구들은 친구들이 아니었다. 개념도 잘 모르고 용기도 없었겠지만 거의 매일 죽고 싶었다. 벽지에 ‘죽고 싶다’ 적었다. 알림장을 벽지 위에 붙여서 가렸다. 열 살, 이사갈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는데 다 알고 있었다.

만 원이 미안한 가정 형편, 고름 터진 아토피, 친구의 자살, 아끼던 동생의 사고로 인한 죽음. 운 좋게 들어간 대기업에선 과로로 인한 우울증. 표면적으로 평범한 환경이었지만, 스스로는 계속 곪았다.

그러다 꿈이 생겼다. 조금만 지친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면, 조금만 나를 온전하게 바라봐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만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면 이 우울한 사회를 살아볼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그런 사회를 만들고 싶다.

결국 지치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는 작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잃을 것이 더 없어서, 무엇보다 몰입할 테니까. 변화는 몰입하는 사람들이 만든다.

그 마음이 현재 전국에서 가장 인지도 있는 지역 공동체 활성화 선진 사례를 만들었다. 내가 만든 사례는 국내 최초 청년마을이 됐고, 직접 여는 거의 모든 프로젝트가 사례로 이슈화 되고 있다. KBS 다큐멘터리 3일, BBC, Times 등에 소개되고 국내외 연구로도 이어지고 있다.

1. 나는 사람들에게 변화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2013 LIG넥스원-C10.jpg

희망적이라고 기회는 평등하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늘 예상과 달랐다.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그러다, 운이 좋게도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그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 잡았다.

처음부터 이런 도전을 할 계획은 없었다. 25살, 군대 전역 후 대학 졸업까지 3학기가 남았다. 군대에서 면접 기회를 얻은 LIG넥스원 홍보팀에 취직하게 됐다. 첫 번째 기회. 일하면서 거의 매일 가장 마지막 퇴근을 했다. 몰입했고 소진했으나 업무 역량은 나날이 인정 받을 수 있었다. 번아웃이 왔다. 어떻게 넘기고 반복하길 3년, 직장 안에서 나날이 시들어 가고 있음을 인정했다. 미뤄둔 도전을 해보기 위해 퇴사를 결정했다.
 
때수건 앞치마를 입고 전국일주
 

 

2014 목욕탕-C40.jpg2014 목욕탕

  

작은 도전을 위해 직장 이름이 아닌 스스로 ‘브랜드’를 만들기로 했다. 때수건을 바느질 해서 앞치마를 만들고 전국일주 했다. 중고책을 팔고, 길거리 사진관을 운영하고, 크고 작은 재능을 판매하면서 페이스북 구독자는 빠르게 5천 명을 넘었다.
 
 관광지 쓰레기를 판매

박명호 2014 메아리 울려 제주-20.jpg


개인이 아닌 스스로 하는 ‘일’이 ‘브랜드’가 되면 좋겠다 생각했다. 제주에서 중고책을 팔다가 관광지 쓰레기를 자주 접하게 됐다. 그 쓰레기는 버리는 사람들이 사가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항공권, 감귤초콜릿 포장지 등 길바닥에 버려진 쓰레기를 플라스틱통에 담아서 관광 기념품으로 팔았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쓰레기를 구입했고, KBS 뉴스를 비롯한 방송을 한 달 내내 촬영했다.
  
여행사를 차려서 전국일주
 

 

박명호 2017 익스퍼루트&한량유치원-20.jpg2017 익스퍼루트&한량유치원

  

중고책 팔면서 전국일주를 했더니 전국을 다니는 여행에 매력을 느꼈다. 전국일주 여행사를 동업자와 함께 차렸다. 사람들을 모아서 전국일주 하는 상품을 판매했다. 사람들은 단일 여행지가 아닌, 여행지가 미정인 ‘전국일주’ 상품을 구입했다. 
 
리브랜딩을 통한 IT 브랜드 활성화
 

2016 아임웹 복사-C10.jpg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 하는 브랜드를 다시 주목 받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 어려운 일을 하더라도 지속 가능할 수 있을 테니까. ‘더즈넛’이라는 웹사이트 빌더를 CMO로서 ‘아임웹’으로 리브랜딩했다. 시리즈A 100억 원을 투자 받을만큼 브랜드는 인정 받았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2. 서울이 아닌 목포, 작은 사회 만들기

제주도 서귀포시, 태국 치앙마이를 처음 고려하고 머물렀다. 결국 전라남도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시 목포를 선택했다. 2017년 6월의 일. 이곳에서 나는 2018년 ‘괜찮아마을’이라고 이름 붙인 로컬 커뮤니티 겸 사회적기업을 시작했다. 쉬어도 실패해도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는 의미. 2018년 행정안전부가 유휴공간을 활성화 할 수 있는 자유 아이디어를 용역으로 공모했고, 그 과업에 최종 선정되면서 시작할 수 있게 됐다. 청년에겐 기회가 없고, 지역(유휴공간)은 활성화 할 청년이 없다는 부분을 연결하는 기획이었다. 충분히 쉬고 자신을 돌아보며 작은 성공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핵심으로 구성했다. 
행정안전부에서는 사업 성과를 인정해서 현재 ‘청년마을’이란 이름의 동일한 의미와 구조의 사업을 계속 전개하고 있다. 그렇게 전국에 누적 39개 청년마을이 생겼다. 그들은 전국 곳곳에서 청년들을 초대해서 작은 사회를 만들고 있다.
 
박명호 2018 괜찮아마을-20.jpg2018 괜찮아마을

 

서울 밖, 낯선 지방 소도시에 청년들을 모으는 방법을 알았다. 그 다음은 그들이 먹고 살게 하는 일이 남았다. 나는 공공의 용역, 관광객을 향한 비즈니스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공장공장’이란 이름으로 1년에 약 10억 원 규모로 B2B/B2G 용역을 수행하고, 식당과 숙소 등 다양한 B2C 비즈니스를 비슷한 규모로 운영하고 있다. 2017년부터 거의 9년만에 꿈의 일부가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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