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점묘화,김중식 서양화가
-청평 아트인 갤러리에서 달항아리에 영혼을 불어넣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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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의 은은한 미소가 조선 시대의 전통 한국 백자 항아리 그림과 겹쳐져 있다. 르네상스 시대 여인과 전통 백자라는 극명하게 다른 두 그림이 팝 아티스트 김중식의 붓놀림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독특한 조합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보름달과 균형을 이루어 달항아리라고도 불리는 백자 항아리를 배경으로 다양한 삶의 모습이 펼쳐진다. 김중식의 작품에서는 서양과 동양이 만나고, 과거는 현재와 연결되며, 전통은 현대와 공존한다.

경기도 가평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넓은 김중식미술관에는 김중식의 작품들이 건물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오드리 헵번, 마더 테레사, 김구, 배우 이병헌과 전지현과 한국의 전 대통령들이 달항아리를 장식하고 있다. 모든 인물들이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마치 금방이라도 캔버스에서 걸어 나올 것처럼 보인다.
김중식 화백은 점묘화가이다. 그는 작은 점들로 작품을 만든다. 그의 그림은 대부분 하나의 캔버스에 두 개의 다른 이미지가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미술평론가 윤우학은 ‘김중식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 이중 이미지를 만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작품을 ‘이중 팝’이라 묘사하기도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 군복무를 마치자마자 그는 1985년 미술 공부를 위해 파리로 떠났다. 곧장 에콜 나시오날 쉬페리외르 데 보자르와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 진학했다. 그는 1995년 귀국하기 전까지 그곳에서 많은 화가들을 만나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그는 화가 김창열에게 3년간 그림을 배웠다. 김창열의 좋은 화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가르쳤다. 그는 표현 없는 사랑은 소용없다고 말하곤 했다. 거장이 될 화가는 생각을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캔버스에 옮겨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남대문 야경, 2017, Mixed media on canvas , 194x130cm>
<꽃밭, 2023, Mixed media on canvas, 145x112cm-2>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파리에 거주할 당시 가족으로부터 매달 5백만 원에서 1천만 원 사이의 재정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그의 가족은 형의 보증으로 인래 파산했다.
그는 생계를 위해 결국 건설 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목공부터 용접, 타일 시공까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했다. 그러다가 분당구에 있는 한 식당에서 일자리를 얻었다. 요리사로 일하는 동안 김 씨는 식당 통로에서 종종 그림을 그렸다.
어느 날 손님인 김봉구 씨가 연못에서 날아오르는 오리 그림을 발견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였던 그는 그 그림이 보통 수준이 아님을 알아차렸다. 그는 김중식에게 ‘그림을 그리는 대신 왜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가.’ 물었으며, 그 질문이 그를 다시 붓을 잡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파리에 오래 머물렀던 탓에 한국 갤러리에서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역 미술계에는 그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결국 그는 아내와 함께 모든 작품을 트럭에 싣고 전국 미술관을 돌며 그림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점의 그림이 팔렸으나 어느 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이 모두 팔리게 되었다. 그림 판매로 얻은 돈으로 김중식은 서울 남부에 작은 창고를 얻었다. 그러나 첫 번째 작업실이었지만 매우 비쌌다. 김중식은 가평 현재의 미술관을 찾을 때까지 20여 번이나 이사를 해야 했다고 한다.
그는 종교적 신념 덕분에 수많은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예술에도 종교적 신념이 영감을 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에서 설교를 듣던 중 김중식은 목사님 뒤의 LED 전자판을 발견한다. 시행착오 끝에 작은 점과 달 그림을 사용하는 현재의 그림 형식을 만든 결정적인 계기이다.
그에게 하얀 도자기는 여성의 자궁을 상징한다. 순수와 기쁨과 잉태와 출산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는 달항아리를 통해 기쁨, 질투, 탄생, 죽음을 도자기에 담아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그는 달항아리를 통해 사랑을 전하고자 한다.

작가노트
나는 새벽에 붓을 잡는다. 새벽 햇살에 비친 유리알처럼 맑은 이슬을 바라보고 작은 우주를 생각하며 내 작품은 탄생된다. 보석 같은 물방울 속으로 비치는 내 여인들의 모습은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순수함 그 자체다. 난 그래서 새벽을 좋아한다. 밤새 고통 속에서 잉태한 나의 생명체가 탄생되며 내가 꿈꿔왔던 여인들이 살아 움직인다. 나의 여인들은 매일 유리알같이 맑은 이슬 속에서 태어난다. 라파엘로의 여인ㆍ모성애ㆍ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 소녀ㆍ모네의 피리부는 소년…. 그냥 아침 이슬은 나의 동화이고 꿈의 나라이다. 나만의 소우주 달항아리 속의 여인들은 잉태한 엄마 뱃속의 아기 탄생과 같이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난 하루하루가 즐겁고 신이 난다. 내 주변의 기쁨 환희 시기 질투 탄생 죽음을 나의 행복이 가득한 달 항아리 속에 가두어 아름다움으로 탄생시키고 싶다. 맑고 영롱한 이슬처럼 순수한 나의 항아리는 누군가 이름도 모르는 도공이 빚어낸 우리의 혼이 깃든 마음속의 항아리다. 그래서 난 이슬을 담고 있는 달항아리를 사랑한다. 그 안에는 어느 무엇이든 담아도 아름다움이 가득해질 거 같다. 내 달 항아리 소재는 어느 대상이든 아름다워질 수 있고, 생명의 빛을 발하며 노래를 부를 것이다.
서양화가 김중식
서양화가 김중식은 충남 공주에서 출생하여 추계예술대학교를 졸업하고, 1985년 프랑스 국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프랑스 재불작가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머니투데이 더 리더 칼럼저자로 활동했다. 스포츠한국 서양화가 김중식의 아트인칼럼 저자이며 환경일보 fun한예술가들 칼럼을 썼다. 대한민국최고국민 대상, 전국기자협회회고 대상, 대한민국신문기자협회 대상, 글로벌 자랑스런 인물 대상, 국제문화 예술공로 대상을 수상했다. 한,중,일 최고우수상을 수상했으며, 개인전 45회, 해외아트페어 전시 300여회에 이른다.
작품 소장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청와대, 양평군청, 대사관, 대검찰청, 성남검찰청, 안양, 여주 검찰청, 도곡동 타워팰리스, 선화예고 명예의 전당, 고려대, 서강대, 건국대, 대원고, 국방대, 우리은행, 북경 외교관저 외 200여 곳이다.
개인소장
중국 강림주석(마오쩌뚱 초상화), 대통령, 정치인 연예인, 스포츠인, 사업가 등등 다수가 있다.
김중식 청평 아트인 겔러리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에 있다. 건물은 3층으로 3층은 거주공간, 2층은 전시실, 1층은 작업실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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