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상징 예술가, 마임이스트 최규호
-비오는 날 우연히 '음악카페 공감'에 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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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임이스트-최규호
40년도 더 된 아주 오래 전 일이다. 작고한 이영유 시인이 가볼 데가 있다며 나를 이끌었다. 헬리콥터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영유 시인은 인천 문화예술계를 손바닥 안에 올려놓은 인물이었다. 아마도 80년대 후반이 아니었을까. 인천기독병원 정문을 지나 허름한 주택가 뒷골목으로 급한 계단을 내려간 것으로 짐작이 된다. 오래된 건물의 반지하로 보이는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거의 천정이 내려앉을 것처럼 위태로운 공간에 소극장이 들어서 있었다.

신나라밴드
그날 처음 만난 마임이스트 최규호 씨의 인상이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영유 시인과는 잘 아는 사이였고 나와는 초면이었으니 그 어두운 공간에서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게 기억나는 것은 그날 두드리는 최규호 씨의 드럼에서 정말 헬리콥타 소리가 들렸다는 것이다. 이영유 시인이 말한 헬리콥타 소리는 최규호 씨의 드럼소리였다.
이곳이 '소극장 돌체'이다. 돌체는 1979년 중구 경동 얼음공장 반지하를 개조해 운영한 인천 최초이자 최장수 소극장이다. 개장 초기에는 관객과 함께 노래하는 싱어롱 공연과 통기타 가수들의 공연장으로 운영되었다고 한다. 이곳을 1983년 최규호 부부가 인수한 후 다음해인 1984년 '극단마임'을 설립했다. 이후 돌체는 40평 남짓한 위태로운 공간에 관객석 96석을 갖춘 인천의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신나라밴드, 색소폰-최규호, 가수-신나라, 기타-이성, 드럼-전현석
그날의 흐릿한 기억으로 돌아보면 그 공간에 살림집도 함께였던 것인지는 분명치가 않다. 다만 당시에 가족들에게도 인사를 한 기억이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다. 일찍 예술에 미쳐서 삶 자체가 예술이 되어버린 남자, 최규호는 이렇게 그의 예술가로서의 인생, 예술적인 인생, 예술이 전부인 인생을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2001년에 문학잡지 계간 '리토피아'를 창간했고 이듬해부터 '창작시노래한마당'을 년간 정기행사로 기획했다. 연주자와 가수들이 필요했고 우리 사무실에 나름의 음향설비도 필요했다. 최규호 씨의 도움이 절실했고 그는 '에버랜드'의 정기공연을 마치자마자 우리 시노래 공연을 돕기 위해 다급하게 달려온 적도 있었다. 음향설비 세트도 그의 손에 의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신나라밴드, 가수-신나라
신나라밴드, 드럼-전현석
신나라밴드, 기타-이성, 가수-신나라
그는 관교동 수협사거리 인근 지하에 맥주를 마시며 어울리는 새로운 공간 ‘규호’를 열고 있었다. 그 무대는 연주와 노래가 멈추지 않는 어쩌면 다소 낭만적인 공간이었을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공간은 내 집에서 백 걸음도 안되는 거리였다. 그는 다른 악기는 신물이 났는지 늘 색소폰을 불어댔다. 그 공간에서 나는 새로운 가수 친구들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을 우리 시노래 무대에 모시기도 했다. 나는 사실 어떤 예술가들보다 노래하는 사람들이 가장 편안했다.

음악까페 '공감'
2007년 그의 '극단 마임'은 미추홀구 문학동의 '돌체소극장'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미추홀구로부터 위탁받은 새 건물의 당당한 공간에서 이제 안정적인 공연활동을 벌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돌체소극장'은 위태로운 상황에 빠져있어 보여 안타깝기 짝이 없다.
시간은 무작정 흘러 2025년 10월 11일이다. 우리는 11월 29일의 리토피아 100호 발간기념식을 준비하는 회의를 마치고 정말 모처럼 '관교동'으로 나섰다. 나와는 인연이 있는 사진작가 유창호의 ‘인천시립예술단 30인의 얼굴들’ 전시작품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비가 내리는 저녁 밴댕이회를 맛있게 먹고 나서다가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카페에 들어섰다.


최규호 씨가 주인인 음악카페 ‘공감’(펜타포트 라이브클럽 파티에 참여한 곳)이었다. 나는 거기에서 십년 이상 찾지 않았던 최규호 씨를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어쩌면 그의 딸 혼사에 축하하러 갔던 날이 마지막이었던지도 모른다. 자주 만나지 않아도 소식들은 듣고 사는 것인데 그마저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아주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주 만날 필요가 없으니 서로 찾지 않는 것이고, 만나지 않아도 서로의 길을 잘 가고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지 않았을까.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그가 연주하는 악기도 변해 있었다. 콘트라베이스다. 악기에 대한 그의 욕심은 하늘을 찌른다. 악기에 대한 욕심이 곧 음악에 대한 욕심이고 음악에 대한 욕심은 또 예술을 향한 집념일 것이다. 그를 마임이스트만이 아닌 엔터테이너로 이해하는 것이 더 맞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그는 무대에서 연주를 계속한다. 사실 우리 나이는 어떤 것도 포기할 만한 나이가 결코 아니긴 하다.
그의 옆에는 여러 명의 연주자와 가수들이 함께 한다. '신나라밴드'이다. 노래에 신나라, 드럼에 전현석, 기타에 이성, 색소폰은 최규호다. 보기에 좋고, 듣기에 좋아서, 사진도 많이 찍고, 영상도 찍어두었다. 하지만 우연히 그를 만나면서 돌체소극장이, 아니면 극단 마임이, 대한민국 유일하게 키워가고 있는 ‘국제클라운마임축제’를 계속할 수 있게 되기를 비는 마음 더 간절해진다.
* 음악카페 '공감' : 인천시 남동구 문화로 89번길 21 / 전화번호 : 032-278-1115 / 영업시간 17:00~07:00


박하리 시인, 정치산 시인, 필자(장종권), 최규호 주인장, 이성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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